
의뢰인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저는 정말 사실대로 다 말했어요.” 이 말에 담긴 간절함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법정은 진실 자체보다, 그 진실을 어떻게 구조화하고 입증하느냐를 훨씬 더 중요하게 본다. 여기서부터 ‘법의 언어’와 ‘일상의 언어’ 사이의 간극이 시작된다.
사건 하나를 맡게 되면, 나는 먼저 전체 맥락을 스토리로 그려본다. 누가 왜, 어떤 흐름으로 행동했고, 상대방은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다음엔 쟁점을 추려낸다. ‘이 부분에서 법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진다. 예를 들어 단순 폭언이라고 생각한 일이 실제로는 명예훼손 요건에 해당하거나, 반대로 형사 고소를 고민하던 일이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더 유리하게 풀릴 수도 있다.
몇 해 전, 거래 중단으로 인한 손해를 주장하던 의뢰인의 사건이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계약 분쟁처럼 보였지만, 상대방이 이미 다른 업체와 공급 계약을 비밀리에 체결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부당한 거래 차단과 손해 유발이 복합된 고의 행위로 사건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다. 핵심은 상대방의 ‘의도’와 ‘사전 계획’을 어떤 방식으로 논리화하고 증거화하느냐였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법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논리를 조립하는 기술이라는 걸 절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 기술은, 현실에서 겪는 감정이나 억울함을 단단하게 감싸 안는 보호막이 되기도 한다.
SBT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건, 추상적인 법리가 아니라 사건의 흐름과 쟁점이 맞닿는 지점을 정확히 짚어내는 실무감각이다. 의뢰인이 말한 ‘진실’을 법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법률가로서 해야 할 첫 번째 역할이라 믿는다.